[기사] 우리의 얼굴을 한 오페라… 있는가?

제목 : [기사] 우리의 얼굴을 한 오페라… 있는가? | 2013년 05월 09일 00시 50분 05초

이름 : 관리자 | 홈페이지 :

추천수 : 724 | 조회수 : 2493

ㆍ예술의전당서 ‘운명의 힘’ 공연 오페라 연출가 장수동

“외국 연출가들을 불러와 국내 오페라 무대를 맡기는 것은 장삿속일 뿐입니다.” 오페라 연출가 장수동(55·서울오페라앙상블 대표 겸 예술감독·사진)은 이렇게 일갈했다. 국내에 좋은 연출가가 없다는 오페라계의 오랜 불평, 해외 연출가와 지휘자 등을 불러와야 그나마 객석이 어느 정도 차는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지난 7일 경향신문사 근처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여기에 덧붙였다.

“좋은 연출가란 무엇입니까? 배우나 성악가에게서 최대치의 역량을 뽑아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연극이든 오페라든, 연기란 몸으로 하는 것 아닙니까? 연출가는 배우나 성악가가 무대언어를 체화시켜 제대로 토해낼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존재입니다. 무대 위의 몸짓이 ‘헛몸짓’이 되지 않게 속을 채워주는 것이 연출가의 역할이란 얘기죠. 그런데 어떻습니까? 해외에서 불러오는 연출가들은 대부분 (외형적인 것에 치중하는) 스타일리스트들입니다. 그들의 무대가 감각적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2주일 만에 속성으로 만드는 공연이 과연 감동을 줄 수 있을까요?”

장 감독은 이 말을 하면서 약간 격앙돼 보였다. “연출가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활약할 무대가 없는 것이 문제”라는 요지였다. “오페라 무대는 패션쇼를 하는 장소가 아니다”라며 “오랜 연습을 통한 숙성이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 외국 연출가에 맡긴 국내 무대 ‘장삿속’일 뿐
2주 만의 속성 공연이 감동 줄 수 있을까
국내 연출가 없는 게 아니라 무대가 없는 게 문제

“국내에도 좋은 연출가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오페라 연출가들은 계속 태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라도 무대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이번에 저희 서울오페라앙상블이 제작하는 베르디의 <운명의 힘>을 최지형 연출가가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40대 후반의 연출가입니다.”

오페라 연출가 장수동은 애초에 ‘연극쟁이’로 공연계에 발을 디뎠다.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극작가로 데뷔했고, 곧이어 해럴드 핀터의 <귀향>을 공간사랑 무대에 올리면서 연출가로 입문했다. ‘사제관계’라는 측면에서 살피자면 연극 명장 오태석(73)의 직계다. 하지만 국립오페라단 단장이었던 성악가 오현명의 부름을 받고 오페라 연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시안게임 직전에 오 선생이 부르셨습니다. 감격해서 달려갔죠. 절호의 기회였으니까요. 저한테 국립오페라단은 일종의 ‘오페라 학교’였습니다. 비상임 연출가로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혔죠.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면서 오페라 악보를 달달 외웠습니다. 심지어는 무대세트 제작, 의상 만드는 일까지 다 해봤습니다. 그러다가 내한했던 오페라 연출가 잔 카를로 메노티의 눈에 띄었습니다. 그분이 저를 뉴욕으로 불렀고 ‘브루클린 아카데미 오브 뮤직’에 추천서를 써줬습니다. 그곳에서 현대 오페라, 동구권 오페라 등을 공부할 수 있었죠. 학비요? 당시 문예진흥원에서 1만달러의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일종의 국가장학금이었죠.”

연출가 장수동은 “우리의 얼굴을 한 오페라”를 자신의 모토로 손꼽았다. 같은 맥락에서, 지금까지 본인이 연출했던 오페라 가운데 가장 잊을 수 없는 작품은 “1994년 공연했던 <서울 라보엠>”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1980년 5월의 광주민주화운동을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과 결합시켜 재구성한 ‘번안 오페라’였다. 같은 해 장 감독이 창단한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창단 공연이기도 했다.

오는 17일 무대에 올리는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은 서울오페라앙상블이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준비한 공연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자주 공연되지 않았던 까닭에 대중에게는 다소 생소하다. 하지만 이 오페라의 서곡만큼은 영화 <마농의 섬>의 주제곡으로 사용되면서 대중에게 친숙해졌다. 장 감독은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운명의 힘>이 공연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제목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운명이라는 굴레를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비극을 장중한 분위기로 그려내고 있는 오페라다. 스페인 귀족의 딸인 레오노라와 잉카제국의 후예인 알바로의 사랑이 기둥 줄거리를 이룬다. 여기에 레오노라의 오빠인 카를로가 또 하나의 중요인물로 등장해, 순간의 실수와 오해에서 빚어지는 복수와 죽음을 그려낸다.

장 감독은 “베르디 오페라의 주인공들은 대개 비주류적 인간”이라며 “몰락한 잉카제국의 후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운명의 힘>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레오노라 역으로는 소프라노 조경화와 이화영, 알바로에는 테너 이정원과 한윤석, 카를로에는 바리톤 강형규와 최진학이 교체 출연한다. 오케스트라는 프라임 필하모닉, 지휘는 장윤성이 맡는다.

관련사이트 : htt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