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자궁 속처럼 올록볼록한 세트를 만들기 위해 동대문시장에서 스타킹 3000족을 사다가 20일 동안 신문지를 구겨 넣었다. 그걸 무대 3면에 다 붙였다. 그래도 3000만원 손해 봤다. 14평짜리 신혼집을 팔고 전셋집으로 쫓겨갔다.
지금까지 오페라 70여편을 감독했지만 한 번도 외국에서 만든 세트를 빌려온 적이 없다. "적자를 내지 않으려고 제가 직접 만듭니다."
번안 오페라 '서울 라보엠'(1997)은
광주 민주화운동을 코앞에서 보고 공포를 못 이겨 다락방에 숨어 사는 간호사를 만난 뒤 탄생했다. 로돌포는 광주 진압군 출신 시인, 미미는 간호사로 설정했다. "오페라의 순결성을 망쳤다"는 항의와 "참신하다"는 응원이 교차했다.
밤마다
성신여대역에서 승강장 스크린도어를 설치하는 인부들을 도와주며 그들의 삶을 엿봤다.
캄보디아 난민 출신 주방장도 만났다. 그래서 그의 오페라에는 땀 냄새, 눈물 맛이 진하게 배어 있다.
소극장오페라 제작비는 편당 5000만원, 대형 오페라는 4억원이다. 18년간 창작 오페라 30편을 제작했지만 흑자를 낸 적은 한 번도 없다.
오페라 한 편을 만들고 나면,
대구·
부산 심지어
제주까지 달려가 타 단체의 오페라 연출을 맡고, 연출료로 새 오페라를 또 만든다. "여기서 밑진 거 저기서 버는 거죠. 우리끼린 이걸 '오페라깡'이라 불러요."
"두 딸과 아들의 학비만 책임졌을 뿐 먹고사는 건 집사람이 챙겼다"는데, 큰딸은 아버지 뒤를 잇겠다며 밀라노에서 오페라 연출을 공부하고 있다. "서른 번 깨졌지만 손해 본 거 없죠?" 그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2008년 제1회 대한민국오페라대상 연출상을 받은 뒤 섭외 1순위가 됐다. 지난 13~16일 국립오페라단의 '가면무도회'도 그가 총지휘했다. '가면무도회'는 29일 제9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폐막작으로 또 한 번 올라간다.
'장수동표 오페라'는 묘하게 현대적. 18세기 말이 배경인 '가면무도회'에서 국왕 리카르도는 자동으로 움직이는 대형 단상을 타고 미끄러지듯 등장한다. 신하 레나토는 국왕암살을 모의한 문서를 수세식 변기에 버린다.
시대를 앞서간 소품 덕에 관객은 극 중 이야기가 '지금 우리'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 얼굴이 있는 오페라를 전국 방방곡곡 퍼뜨리고 싶어요."
▶가면무도회=29일 오후 3시 대구오페라하우스, (053)666-6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