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리뷰>아시아적 가친 선보인 '리골레토' | 2011년 01월 31일 17시 27분 51초
  이름 : 관리자 | 홈페이지 : 추천수 : 377 | 조회수 : 2470  

2006년 월간 '몸' 공연 평

음악칼럼니스트 이용숙

 

 

무기의 그늘에서 춤추는 원혼

 

서울오페라앙상블의 <리골레토>

  '여자의 마음'등의 유명 아리아가 들어있는 베르디의 오페라<리골레토>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해마다 공연되는 작품의 하나다. 그건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관객들이 어느 정도는 작품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서, 공연을 맡는 연출자의 입장에서는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오페라 공연이란 대체로 유럽의 전통적인 연출방식과 무대를 재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오페라 공연을 찾는 관객들도 대부분<리골레토> 또는 <돈 조반니>라는 오페라가 과연 어떤 작품인가를 알아보려는 호기심을 가졌을 뿐, 이 작품을 연출가가 어떤 새로운 해석으로 선보일 것인가를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음악 동호회의 활발한 움직임과 오페라 강좌의 확산등 으로 오페라 관객의 수준이 꾸준히 높아지면서, 지난해부터는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대나 등장인물의 직업등을 바꾸어 놓는 현대적인 연출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국립오페라단의 <나부코>, 성남아트센터의<파우스트>, 삐우앤삐우의<사랑의묘약> 등이 그 성공적인 예. 새로운 연출과 컨셉트와 예기치 못한 연출상의 아이디어가 속출하는 이런 공연들에 관객을 열광했다. 무대 장치나 의상의 화려함은 줄어든 대신 출연진의 놀라운 연기력과 정교한 조명이 무대 집중도를 높였다. 한국 오페라의 도약 가능성을 보여준 프로덕션들이었다.

 

거대자본의 폭력성 비판한 아시아 판 리골레토

지난 5월 27일부터 6월4일까지 서울오페라앙상블(예술감독 장수동)이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무대에 올린<리골레토> 역시 이런 새로운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관객들의 환호를 이끌어낸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베르디의 <리골레토>는 16세기 이탈리아 귀족 궁정을 무대로 귀족들의 오만 방자함과 권력의 횡포를 비판하면서 부녀 간 소통의 부재가 낳은 비극을 다룬 오페라, 이제까지 이 작품이 우리나라서 공연 될 때마다 한결같이 고전적인 연출방식을 고수해 궁정을 무대로 설정한 것과는 달리 연출가 장수동은 과감하게 무대를 '현대 아시아, 어느 가상의 항구도시'로 바꾸어 놓았다. 원작의 주인공인 바람둥이 만토바 공작은 이번 공연에서 외관상으로는 다국적 기업 CEO지만 지하실에서는 무기 밀매업에 종사하는 추악한 인물이다. 귀족의 절대권력이 거대자본의 권력과 그 폭력성으로 최환 되었지만, 원작의 의도와 내용은 그대로 살린 프로덕션, 원작에서 궁정광대인 리골레토는 전쟁난민 출신인 보스(공작)의 요리사로 설정된다.

이처럼 배경 설정을 현대적으로 바꾸는 것이야 어려울 게 없다. 문제는 '새로운 해석'에서 달라진 모든 요소가 연출의 기본 컨셉트와 일관성있게 맞아들어 가는가 하는 점이다. ㄹ그리고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2006년, 한국'이라는 공연상황에서 이 해석이 과연 당위성과 필연성을 갖는가 하는 문제다. 첫날 공연을 끝까지 보고 난 소감은 이 공연이 위의 난제들을 모두 지혜롭게 풀어냈다는 것이었다. 관객들이 표현하는 만족도를 통해서도 그 점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1982년 영국 국립오페라 공연에서는 이미 공작과 대신들을 뉴욕의 이탈리아 마피아로 설정한 선례가 있고, 2005년 에는 독일 영화감독 도리스 되리가 뮌헨 오페라에서 오페라<리골레토>를 연출하면서 영화 <혹성탈출>의 컨셉트로 관객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만토바 공작은 원숭이 무리의 대표, 리골레토는 딸 질다를 데리고 원숭이들의 혹성이 불시착한 우주비행사로 등장한다. 그러나 되리의 다소 무리한 시도는 관객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대중문화에 국한된 한류(韓流)를 순수예술로 확대하려는 취지에서 '아시아판 리골레토'라는 별칭을 붙여 11월에 상하이 에서도 공연 예정인 이번 프로덕션에는 베르디의 원작에 없는 귀신, 즉 원혼(愿魂)이 등장한다. 바람둥이 공작의 노리개가 되었다가 버림받는 몬테네로 백작의 딸은 극중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서만 그 존재를 알 수 있을 뿐 실제로 오페라 무대에 등장하는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는 몬테로네의 딸이 험한 꼴을 당하고 실성한 듯한 모습으로 등장해 보스(공작)와 그 수하들 앞에서 칼로 자결하는 장면이 1막에서 순간적으로 지나간다. 약간은 무리로 비칠 수 있는 이 자살 장면은 그 뒤에 계속 여주인공 질다를 따라다니는 이 자살한 딸의 혼령 때문에 필연성을 획득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리골레토>는 무용이 비중을 차지하는 오페라가 아니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1막이 열리면 초현대식 하이테크 빌딩의 지하 연회장이 무대가 되는데, 여기서 보스와조직원들과 매춘여성들의 은밀한 파티가 벌어질 때 박호빈의 안무로 '댄스씨어터 까두'가 선보인 춤은 오페라 무대가 아니라 홍콩 누아르를 보는 듯한 독특한 분위기로 관객을 극에 몰입하게 했다. 몬테로네 딸의 혼령 역을 연기한 무용수 홍세희는 1막2장에서 질다가 사랑에 빠졌을 때 서러운 몸짓의 춤을 보여주며 질다의 죽음을 암시한다. 사랑의 절정에 서 죽음이 암시되는 매혹적인 장면이다. 그리고 3막에서 질다가 자신을 배신한 보스를 살리기 위해 청부살인업자 스파라푸칠레의 칼 아래 뛰어들 때 혼령은 그 자살이나 다름없는 죽음을 막기 위해 문을 막아서며 절망적인 몸짓으로 간절하게 질다를 막아보려 애쓴다. 홍세희의 뜨거운 춤이 아니었다면 이 장면이 그만큼 관객의 깊은 연민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주로 공포영화에서 볼 수 있는 원혼을 오페라 무대에 불러낸 것 자체가 대단히 참신한 아이디어였고, 무용수의 열연이 그 아이디어를 더욱 효과적으로 빛나게 했다.

 

연꽃과 피스톨 그리고 아시아적 가치

궁정광대 대신 요리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리골레토 역의 바리톤 정기홍은 곱사등이라는 신체적 장애를 자연스럽게 연기하면서 특유의 부드러운 미성으로 극적인 호소력을 발휘했다. 좀 더 강렬하게 분노의 에너지를 폭발시켰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화의 구호 속에 좌절당한 아시아적 가치'를 일깨우려는 연출가의 의도가 '공격성 넘치는 서구의 레골레토' 대신 '분노와 슬픔을 내면화하는 아시아적 리골레토'를 원한 것으로 보인다. 광대 옷 대신 조리사 복장을 하고 손에는 광대 방울 대신 조리기구를 든 리골레토. 그는 몬테로네 백작의 분노를 조롱하는 1막 첫 장면에서 조차 악의로 가득 찬 인물로 보이지는 않는다. 1막 2장에서 딸이 있는 난민촌의 허름한 집으로 돌아올 때 리골레토가 끌려 오는 자전거와 자전거 바구니에 담긴 휜 연꽃 두 송이는 관객들을 잔잔한 충격과 감동으로 이끌었다.(물론 연꽃은 딸에게 주는 아버지의 선물이다). 무기밀매업으로 자본을 키워가는 보스의 조직원들이 무대에서 수시로 피스톨을 빼드는 것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고전적인 연출 무대에서 질다는 순결하고 순수한 이미지를 위해 언제나 흰색 또는 푸른색의 긴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지만 이번 프로덕션에서는 동남아시아 여성의 전통 일상복 차람으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아시아적 색감을 살린 최화경, 김지연의 의상디자인이 남달랐다. 질다 역의 김수정은 흔히 보는 '청순가련형'의 질다가 아닌 순진하고 밝고 건강한 질다를 연기했다. 어설픈 소극으로 전락할 위험을 지닌 마지막 질다의 죽음 장면이 관객에게 처절한 공감을 선사할 수 있었던 것은 역할에 완전히 몰입한 김수정의 생생하고 사실적인 연기 덕택이었다. 조직의 보스로 모습을 바꿔 원작의 민토바 공작 역할을 노래한 테너 이현은 역할에 어울리는 노련한 연기로 관객을 설득했고, 스파라푸칠레역의 베이스 김요한은 깊이와 안정감이 돋보이는 가창으로 관록을 과시했다. 그 밖의 조역들과 합창단 또한 정확하고 활기 있는 가창을 들려주었다. 김홍식이 지휘한 원주 시립교양학단의 생동감 넘치는 템포와 깔끔한 연주, 복잡하고 화려한 무대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도 관객의 시선을 끊임없이 무대에 고정시킨 이학순의 간명한 무대 미술과 고희선의 효과적인 조명역시 전체적인 연출 컨셉트를 더욱 튼튼하게 뒷받침해주는 힘이 되었다. 7백석 가량의 토월극장이 상당히 이상적인 오페라 공연장임을 깨닫게 해주기도 한 이번 공연은 한국 오페라가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하고 모색해온 연출가 장수동의 오랜 실험이 맺은 성공적인 결실이었다.

 

 

  관련사이트 : http://
  <리뷰>오페라의 진화! 아시아 모던오페라 '리골레토'
  <리뷰> 감각적 쾌락을 선사한 '돈 조반니'

TOTAL : 18 , PAGE : 1 / 1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추천 조회
N <리뷰> 상징주의와 사실주의의 결합 관리자 10-17 285 1379
N <리뷰> 붉은 빛의 오페라 [가면무도회] 관리자 10-19 344 1622
N <리뷰>한국 명품 목소리들의 조화,본고장 이탈리아서도 탐낼만  ×1 관리자 10-17 293 1360
15 <관객 공연후기> 노처녀와 도둑, 메디엄 관리자 04-28 397 2188
14 <리뷰>한국적 정서로 재창조된 그리스신화 오페라 관리자 01-31 516 2567
13 <리뷰>화려하지만 슬픈러브스토리 '라트라비아타'   ×1 관리자 02-07 457 2969
12 <리뷰>아시아 K도시에서의 자화상 '라 트라비아타' 관리자 01-31 349 2223
11 <리뷰>독특한무대 과감한 해석 '라 트라비아타'   ×1 관리자 01-31 450 2306
10 <리뷰>시대뛰어넘은비극, 관통하는감동'라트라비아타' 관리자 01-31 363 1933
9 <리뷰>지하철역에 울려퍼진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1 관리자 01-31 384 2442
8 <리뷰>한국정서로 탄생한 '오르페오와에우리디체'   ×1 관리자 01-31 444 2986
7 <리뷰>지하철로 무대를 옮긴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관리자 01-31 399 2180
6 <리뷰>사랑의 변주곡으로 사랑을 노래 '둘이서 한발로' 관리자 01-31 447 2763
5 <리뷰>벨칸토의서정미와 기교살린절묘한앙상블 '모세' 관리자 01-31 421 2499
4 <리뷰>연출에의한 오페라의 환생'리골레토' 관리자 01-31 444 2434
3 <리뷰>오페라의 진화! 아시아 모던오페라 '리골레토' 관리자 01-31 427 2319
<리뷰>아시아적 가친 선보인 '리골레토' 관리자 01-31 377 2470
1 <리뷰> 감각적 쾌락을 선사한 '돈 조반니' 관리자 01-31 440 4208